기다림과 느림의 미학
김택상의 작품은 오랜 기다림을 거쳐 만날 수 있다. 먼저 사각형의 나무틀 위에 캔버스 천을 씌우고, 그 속에 아크릴 물감을 엷게 희석한 붓을 붓는다. 그 상태로 한동안의 시간이 지난 후 물을 빼고 캔버스를 건조시키면 침전된 안료가 자연스럽게 색상을 드러낸다. 이 같은 과정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반복하면 물과 물감의 흔적이 시간의 무게만큼 고스란히 담겨있는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느린 시간의 흐름 속에 작품을 맡긴 채 담담히 기다리는 과정은 오래된 나무에서 발견되는 나이테의 생성과 흡사하다. 그리고 관객들은 작품이 간직한 시간의 결 속으로 들어와 한가롭게 시간을 음미하게 된다.

물이 그린 자연의 색채
맑고 투명한 색들이 서로 스며들고 번져 나가며 이루어진 김택상의 추상회화에서 색채는 독특한 층위와 깊이를 지닌다. 물이 화면 속에 젖어들고 건조되는 과정의 반복을 통해 마치 우리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한 색감이 탄생된다. 미묘한 색채의 얼룩과 농담은 작가가 아닌 부드러운 물의 손길로 빚어진 것이다. 한편 물빛을 머금은 파란색, 나뭇잎의 초록색, 가을 국화의 노란색, 저녁 노을의 붉은색 등 그의 색채는 자연을 머금고 있다. 자연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꾸밈없이 전달하는 삶을 대하는 작가의 시선과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