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 안의 사물들


김수강은 손안에 들어올 만한 크기의 작은 사물들을 찍었다. 자신의 손아귀에 가득한 물건, 사물의 존재감을 작은 손으로 온전히 체감하고 있다. 생김새와 크기, 질감이 다른 이 작은 물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녀의 손 안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이다. 비로소 그것과 내가 완전한 일체감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주변의 소소한 사물들, 작은 것들, 일상에서 쓰이는 것들을 책자에 실린 인쇄물(사진)의 한 부분을 배경으로 해서 찍었다. 보색의 대비와 작은 사물들과 어우러져 미묘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준 바탕 위에는 단추, 실, 열쇠, 우표, 집게, 줄자, 동전, 담배꽁초, 머리핀, 연필, 클립, 나사못, 바둑알, 주사위, 장기알, 사탕, 리본, 메추리알 등이 존재한다.

나를 둘러싼 많은 사물, 물건들을 어느 날 우연히 본다. 둔탁하고 밋밋하게 변해버린 한 평범한 물건을 붙잡고 있는 자신을 문득 발견한다. 강물이 바위를 핥아서 모래를 만들었듯이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은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 누군가가 만들었을 것이다. 신기하고 기이하다. 내가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모두 스스로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지어낸 것이다. 그것들이 나의 삶을 장식하고 있다. 그 작은 사물들 없이는 나는 살기 힘들고 아울러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때론 잊고 산다. 김수강은 그 작은 사물들을 각별한 애정의 시선으로 응시한다. 거기에는 물신의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고 무심함과 권태로움도 자리한다.

나름의 가치를 지닌 모든 사물들은 저마다 모호한 이야기들로 만들어진 가면을 쓰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신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는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 언어나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다름없다. 그것은 인간이 살아있는 환경이 결여된 불모의 세계일 것이다. 사물에 깃들여져 있는 영혼의 현전을 모른 척 지나쳐 버릴 수 없는 자들이 바로 우리들 아닌가? 이 페티시즘은 가장 고대적이고 우주적인 숭배의 한 형태이다. ‘페티코(Fetico)’라는 포르투갈어에서 연유한 이 단어는 요술, 기교라는 뜻이란다. 또한 그것은 일종의 수음에 해당한다. 좋아하는 대상에 대하여 과도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일, 만지는 것을 좋아하는 것, 접촉함으로써 정신적인 이미지를 활기차게 하는 것, 그것이 다름아닌 페티시즘이다. 나로서는 김수강의 사진들을 보면서 아주 작은 물신숭배를 엿본다. 아울러 그 안에서 무성적 향략의 내음도 은연중 맡는다. 김수강의 작은 사물들은 또한 한 개인의 지극히 개별적인 추억에 슬쩍 닿아있어 보인다. 추억이란 존재의 뿌리다. 추억에 대한 경멸이 결국은 존재의 소멸에 가닿는다. 김수강은 자신의 주변에 존재하는 이 작은 사물을 빌어 추억과 그 개별성의 세계를 존중하는 시선을 보여준다. 그렇게 찍힌 사진 속 사물들은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얽히고 설킨 주변 이야기를 내장하고 있다. 우리들의 상상력, 지난 시간과 연루된 뿌리깊은 추억을 건드려준다. 그러니까 사진이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것은 사진이 문학의 역할을 일정하게 맡고 있다는 말도 된다.

그녀는 사물을 단독으로 대면시켰다. 사물은 존재하는 것이다. 무생물인 이 값싼 공산품조차도 하나의 활기찬 생명으로 다가온다. 느리고 한가하게 바라본 그 사물들을 고독하게 올려놓았다. 그런 사물을 찍는다는 사실은 모든 욕망에서 비껴난 삶에서 나오는 시선에 의해 가능하다. 그 시선에서 감촉되는 것은 은일자의 세계다. 조용히 느리게 사는 삶, 느림 속에서 인생의 맛을 음미하는 것 속에 그 작은 사물들은 비로소 하나의 존재로 다가온다. 바쁜 삶, 무엇인가를 만들고 늘려가야만 만족하는 의욕이 과잉된 삶에서 벗어났을 때 가능한 시선 말이다.

장자는 '제물론'에서 있음과 없음의 차별을 없애는 '제물'의 관점을 말한다. 장자에게 있어서 있음과 없음은 대등한 상대로서의 균형을 상실하고 있다는 엄정한 사실이다. 그러니까 큰 것은 작은 것에 비해 크다. 크고 작음이 존재하는 것은 그저 자연의 그러함 때문이다. "사물이 같지 않은 것은 원래 그것들이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다.(物之不齋, 物之情也)" 크다고 해서 우쭐거릴 것도, 작다고 해서 기가 죽을 것도 아니다. 큰 것은 큰 것대로 편하고, 작은 것은 작은 대로 편하다. 그래서 장자는 존재의 자연스러운 '있음'을 존중한다. 사물은 궁극적으로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모든 존재는 본래의 자연의 원리에 따라 생존하고 자라나고 소멸한다. 거기에 인위가 개입될 때 자연은 혼란에 빠져든다. 그러나 인간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自然)'두지를 못한다. 그래서 장자는 사물의 본래 상태에 순응하여 사물을 바라보고 거기에 어떤 조작도 가하지 않는 '인물부물(因物付物)'의 경지를 말한바 있다. 작은 것에 만족하며 작은 만족에 행복해 하며 살아가는 사람, 사물의 실정(物之情)을 존중하는 장자 사상이 이 사진에 물처럼 스며 들어있는 있음을, 문득 깨닫고 있다.

- 박영택 (미술평론, 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