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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전보다 훨씬 더 섬세한 색채의 향연을 구가한다. 먼저 선을 반복적으로 칠하는 행위를 통하여, 선은 색이 되고, 색은 선이 된다. 그 다음으로는 푸른색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해서이다. 고대로부터 푸른색은 가라앉는 성질을 가진 것으로, 언제나 수동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럼에도 푸른색은 하나의 자극적인 에너지인 동시에 휴식이라는 모순을 탄생시킨다. 바로 이 점에서 곽경화의 색채는 ‘명상적’으로 활동한다. -중략-


작가의 작품은 하나의 드로잉인 동시에 회화이며, 일종의 구상인 동시에 추상이다. 아니 미니멀에 가까운 추상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어떤 개념이나 철학도 낯설고 부조리해 보인다. 그녀의 꾸준한 독서편력이 말해주듯이, 이미 그녀가 사용하는 육체는 지성과 영혼의 자발성을 체화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바다를, 물결을, 구름을, 눈물을 바라보듯 그녀의 육체성이 체화된 작품에 시선을 던져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아주 느리게 응시를 되돌려줄 것이다. 그런 느림의 투명한 시간 속으로 반복적으로 함몰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은둔자의 추상이 원하는 바일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곽경화의 그림 하나하나는 하이쿠인 동시에 하이쿠로 조합된 표제시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모든 사라짐과 소멸에 대한 것이나, 더 이상 애달프지 않은 송가로써 시가 생성되는 순간은 아닐까... 

유경희 미술평론가 평론 ‘심연의 피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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